[2016.08.16] “부정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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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좋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남태평양 군도를 연구하던 인류학자가 왜 백인들은 이런 발전을 이루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느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질문을 보다 본질적인 질문으로, 곧 왜 유라시아가 아메리카보다 앞설 수 있었느냐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환경이 인류의 문명에 끼친 영향을 다층적인 차원에서 설명합니다.
오늘 소개할 <부정 본능> 역시 아주 멋진 질문에서 시작된 책입니다. 의학연구자인 아지트가 파고든 질문은 바로, 왜 유전적으로 거의 유사한 인간과 침팬지, 보노보가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유전자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쥐와 생쥐가 비슷한 정도 보다 인간과 침팬지가 더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인간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이르게 되었는가? 왜 우리는 지금 이대로의 모습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P.13
서문에 나오는 이 책이 나온 과정 자체가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인도 출신의 의학연구자 아지트 바르키와 생물학자 대니 브라워는 생전 딱 한 번 만나 두어 시간 대화를 나누었을 뿐입니다. 위의 질문을 염두에 두고 인류의 기원을 연구하던 아지트는 한 강연장에서 강연 뒤 자신을 찾아온 대니를 만나게 됩니다. 아지트보다 두 달 먼저 미국에서 태어나 아리조나 대학의 생물학 교수로 있었던 대니는 위의 질문을 반대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동물들 중에서 왜 인류만이 이런 복잡한 정신적 능력을 가질 수 있었는지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수십억 년 전의 작은 미생물에서부터 점점 더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왔다는 것은 이제 상식입니다. 또한, 영장류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더 지적인 – 그 정의가 무엇이건 간에 – 개체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데 유리했을 것이라는 가정 역시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 집니다. 그러나 매우 단순한 사고실험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 가정에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진화의 핵심은 번식에 유리한 특성을 가진 유전자가 더 많이 복제, 증식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포유류가 우연히  조금 더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는 다른 개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그리고 다른 개체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곧 필멸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공포에 시달릴 겁니다. 어쩌면 자살을 택할지 모릅니다. 적어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짝짓기 경쟁에는 절대 뛰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지적 능력은 도태되고 맙니다.
결국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부정 본능”, 곧 현실을 무시하고 잊어버리는 무의식적 능력이 위의 지적 능력과 우연히 동시에 인간에게 나타났기에 인류가 오늘날과 같은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종교와 철학은 이런 인간의 부정 본능이 최대로 반영된 작품입니다.
실제로 인간에게 현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특성이 있다는 증거는 매우 많습니다. 그리고 이 재능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까지 합니다. 낙천적인 암 환자는 비관적인 이들보다 오래 살며, 운동 선수들은 자신이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입니다.
물론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실린 데이지 유하스의 서평처럼, 이 책의 주장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그들의 주장을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디고 하며, 또한 마음이론에 대한 신경회로와, 자기기만적 경향성에 대한 신경회로의 증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지트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미리 알려 드리자면 여러 과학 분야들이 그렇듯 우리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내놓겠지만, 우리가 지지하는 이론을 결정적으로 증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이론에 부합하는 사실들과 개념들을 이용해 “하나의 긴 주장 one long argument”을 펼칠 것이다. 물론 과학의 전통에 따라 우리의 “아름다운 가설을 난도질 slay our beautiful hypothesis” 할지 모르는 “흉한 사실들 ugly facts”도 열심히 찾을 것이다.” -P.32
아지트는 대니와의 만남 이후 이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켰고, 몇 년 뒤 그에게 메일을 보냈지만 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실망한 그는 몇 달 뒤, 우연히 대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대니가 미완성 원고를 자신의 부인에게 남겼다는 것을 들었고, 그 원고를 자신이 책으로 완성하는 것이 그의 운명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는 “대니의 독창적인 사상에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는 아지트와 대니 두 사람의 흥미로운 생각에 경의를 표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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