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0] 과학과 낭만의 아름다운 이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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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낭만의 아름다운 이중주

칼 세이건의 『지구의 속삭임』

1977년 8월 20일 보이저 2호가 먼저 출발했다. 그리고 목성에 더 빨리 도착할 뿐 아니라, 더 빠른 속도로 태양계를 떠날 예정이었기에, 형보다 나은 동생이 될 보이저 1호가 16일 후인 9월 5일 출발했다.

1977년 8월 20일, 플로리다 주 케이프커내버럴의 케네디 우주 비행센터에서 보이저 2호가 발사되는 모습. NASA 제공. / 『지구의 속삭임』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관광지의 기둥에서, 신학기 새 교실의 책상에서, 헌 책의 귀퉁이에서 우리는 앞선 이들의 흔적을 발견한다. 어쩌면 이것은 배설물이나 물리적 흔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했던 동물적 본성에서 유래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좀 더 시적인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바로 유한한 수명을 가진 필멸자의 한계를 보상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이 글의 저자 중 한 사람인 앤 드루얀은 이런 의미에서,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살았던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말을 인용한다. “언어는 영원에 도전한다.” 드루얀은 호라티우스의 말을 우리의 기억 자체가 그의 말에 대한 증명이라고 이야기한다. 호라티우스의 말이 살아남은 2000 년은 긴 시간이다. 그러나 보이저호는 말 그대로 인간에게는 영원과 다름 없는 시간에 도전하고 있다.

흔적을 남기려는 마음은, 미래를 기약하는 마음이다. 어린 시절 동네의 조숙한 아이에게 이끌려서 뒷산 나무 밑에 무언가를 묻고, 10년 뒤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나눈, 혹은 그와 비슷한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어른들도 이런 일을 한다. 단지 타임 캡슐이라는, 시간을 가로 지른다는 의미의 더 그럴듯한 이름이 붙어 있다. 시간을 압축하는 것은 인간에게 특별한 감정을 선사한다. 학창 시절을 다루는 드라마는, 마지막 회에 이들이 어른이 된 이후를 보여 주는 경우가 많다. 픽사의 명작 「업(Up)」에서 칼과 엘리의 인생이 축약되어 펼쳐지는 초반의 몇 분을, 많은 이들은 가장 감동적인 영화 도입부로 꼽는다. 어린 시절의 골동품 상자를 어른이 되어서 열어 볼 때도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보이저 호에 실린 골든 레코드를 직접 제작한 이들이, 그 레코드의 내용을 설명한 『지구의 속삭임』을 읽는 내내,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보이저호는 수천, 수십만, 수억 년 뒤에도 우주를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레코드의 내용을 준비하는 이들도 이 사실을 잘 알았다. 자신들이 우주적 규모의 타임캡슐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이 타임캡슐을 여는 이가 어떤 지적인 능력을 가졌을지, 그리고 과연 그 긴 시간 동안 어떤 생명과 조우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사실 이 골든 레코드의 진정한 수신자는 바로 우리 인류일 것이다. 실제로 당시의 자문 위원들은 이 점 또한 잘 이해했다. 자문 위원 중 한 명인 HP의 버나드 올리버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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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이 단 한 명이라도 금속판을 볼 가능성은 극히 작지만, 지구인은 틀림없이 수십 억 명이 보게 될 겁니다. 따라서 금속판의 진정한 기능은 인류의 기상에 호소하고 그것을 북돋는 것, 외계 지적 생명체와의 접촉을 인류가 반갑게 기대할 사건으로 여기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보이저호의 일부 특징들을 보여 주는 우주선 구조도. 행성 쪽을 향한 기기들이 대부분 설치되어 있는 이른바 스캐닝 플랫폼이 맨 위쪽에 있다. NASA 제공. / 『지구의 속삭임』에서

그러나 이들이 처음부터, 우주로 보내는 메시지가 바로 인류를 향한 메시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아니다. 『지구의 속삭임』에는 이런 우주적 규모의 타임캡슐이 모두 네 번 등장하며, 어떻게 이 사람들이 메시지의 진정한 의미를 점점 더 깨달아 가면서 그 내용을 가다듬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이것은 시간 순서대로 파이오니어 10호(1972)/11호(1973), 아레시보 성간 메시지(1974), 라지오스(LAGEOS, 1976), 보이저 1호/2호(1977)이다. 각각에 포함된 메시지들의 성격은 조금씩 달랐다. 예를 들어 아레시보 성간 메시지는 전파 망원경으로 우주에 쏘아진 전파 신호인 반면, 나머지 세 건은 모두 알미늄이나 구리 등의 물리적 실체가 우주로 발사됐다. 그리고 라지오스는 지구 상공을 돌다가 800만년 뒤 지표면에 추락할 예정으로, 다름 아닌 바로 지구의 후손에게 보내는 진정한 의미의 타임캡슐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보다 더 분명한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미지의 존재에게 과연 무엇을 전달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것을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각 메시지에 담겨 있다는 점이다.

파이오니어 10호와 11호에 부착된 금속판 사진. / 『지구의 속삭임』에서

1972년과 1973년에 첫 번째로 지구를 떠난 파이오니어 10호와 11호에는, 모두가 한 번은 보았을, 옷을 입지 않은 두 남녀가 외계인을 환영하는 모습의 그림이 실렸다. 좌측 상단에는 이 그림을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인, 시간과 거리의 단위인 수소 원자가 있으며 좌측에는 이 단위를 바탕으로 주기적으로 밝기가 변하는 펄사들을 이용해, 우주에서 태양계의 상대적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그림이, 그리고 하단에는 태양계 내의 행성들과 지구를 나타낸 그림이 있어서 이것들로써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말한다. 그리고 우측에는 파이오니어를 배경으로 한 남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누구인가’를 이야기했다.

1974년 11월에 아레시보 천문대는 전파 망원경과 발전기를 새로 단장해서 우주로 메시지를 보낼 준비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1,679개의 이진수로 이루어진 신호로 만든 그림을 보냈다. 이 그림에는 이 내용을 해석할 수 있는 1에서 10까지의 숫자, 그리고 원소들의 원자 번호를 이용한 DNA와 인간의 모습을 담아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설명했고, 태양계와 이 신호를 전송하는 아레시보 천문대의 모습을 담아, 우리가 어디에서 이 신호를 전송하는지 설명했다.

1976년 발사된 라지오스(LAGEOS)는 레이저 지구 역학 위성(Laser Geodynamic Satellite)의 앞 글자를 딴 이름이다. 이 위성은 100년에 2.5센티미터씩 움직이는 대륙의 움직임을 측정하기 위해 발사된 것으로, 약 800만 년 뒤에 수명을 다해 지구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위성에는 역시 1에서 10까지의 숫자, 그리고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그림과 숫자 1을 이용해서 시간 단위를 알려주고, 약 3억 년 전 하나의 대륙이었던 지구의 모습, 위성이 쏘아질 때(현재) 지구의 모습, 그리고 약 800만 년 뒤로 예상되는 지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즉 이 위성을 발견할 이들이 세계 지도를 지녔다면, 이들은 이 위성이 800만년 전에 지구에서 쏘아 올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드디어 1977년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는 보이저호에 실을 메시지를 준비하며 다시 칼 세이건을 부른다. 세이언과 그가 소집한 자문 위원들은 처음에는 파이오니어에 탑재한 금속판에 아레시보에 포함했던 DNA 정보를 넣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 메시지가 또한 인류 전체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역시 물리적인 기록 방법이므로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축음기용 레코드판을 이용하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지구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 각국의 대사들이 참여하고 지구의 상당수 언어로 녹음한 인사말, 지구의 소리, 지구의 음악 등 앞선 시도들과는 차원이 다른, 다양한 내용들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지구의 속삭임』은 바로 이 골든 레코드에 수록된 내용을 담당한 이들이 직접 설명한 책이다.

보이저호 앞에서 촬영한 골든 레코드의 모습.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즐거웠던 부분은, 세이건 역시 수학의 우주적 보편성과 수학과 음악의 관계를 통해 여러 번 강조한 것처럼, 바로 골든 레코드에 실린 음악들을 설명한 부분이었다. 어쩌면 세이건은 후대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이렇게 사용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겠지만, 각 음악에 대한 설명과 이 곡들을 수록하게 다양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유튜브에 올라온 보이저 골든 레코드의 음악을 직접 하나하나 감상했던 시간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바로 이 점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안타깝게도 몇몇 곡은 저작권 때문에 재생되지 않는다.) 세이건이 인용한, 드루얀의 다음 회상을 보자.

로버트 브라운이 우주로 보낼 월드 뮤직 목록에서 맨 위에 적은 곡은 수르슈리 케사르 바이 케르카르(Surshri Kesar Bai Kerkar)가 부른 「자트 카한 호(Jaat Kahan Ho)」였어요. 최근에 절판된 오래된 녹음이었죠. 음반 가게 수십 곳을 뒤졌지만 다 없어서, 브라운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라가(raga, 인도 전통 음악)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는 거절하더군요.

“하지만 우리가 그 곡의 녹음을 제때 발견하지 못해서 레코드판에 못 실으면 어쩌죠?” 나는 하소연했어요. 선곡을 마무리하기까지 사흘이 남은 상황이었죠.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고 환상적인 음악 전통 중 하나인 인도 음악을 포함시키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서 엄청나게 걱정됐어요.

그는 “계속 찾아보세요”라고 말하더군요.

다음날 여러 사서들과 문화 공보관들에게 묻고도 소득을 거두지 못한 채 다시 그에게 전화했을 때, 나는 절박했어요.

“「자트 카한 호」는 계속 찾아볼게요. 하지만 만일을 대비해서 다른 곡을 한 곡만 더 알려주세요. 그다음으로 훌륭한 곡은 뭐죠?”

브라운은 “그 곡에 범접할 곡은 없어요. 계속 찾아보세요.”라고 고집했어요. 내가 다른 민족 음악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다들 브라운을 믿으라더군요. 나는 인도 식당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어요.

뉴욕 20번가 렉싱턴 애비뉴에 인도인 가족이 운영하는 전자 제품 가게가 있어요. 그곳에 카드 게임용 탁자가 놓여 있었는데, 탁자를 덮은 마드라스 천 밑에 먼지 쌓인 갈색 통이 있었고, 그  속에 뜯지 않은 <자트 카한 호> 음반이 세 장 들어 있더군요. 가게 주인들은 내가 세 장을 몽땅 구입하는 이유를 궁금해하며 이것저것 추측을 늘어놓았죠. 나는 어서 들어보고 싶어서 가게를 뛰쳐나와 쏜살같이 집으로 달렸어요.

정말이지 전율하게 만드는 음악이었죠. 나는 브라운에게 전화해서, 나도 모르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했어요.*

*<자트 카한 호>는 유튜브에서는 재생되지 않는다. 그러나 비메오(Vimeo)에서 들을 수 있다. [바로가기]

파이오니어 11호가 찍은 목성의 사진. 중앙에 대적반이 보인다. NASA 제공. / 『지구의 속삭임』에서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하나는, 골든 레코드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이 적은 예산으로 쪼들리면서도, 우주로 날아가 영원히 남을 메시지를 선정하면서 상업적인 고려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을 의도적으로 피했다기보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가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오늘날 다시 이런 프로젝트가 만들어진다면,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지구적 관심을 끌 예정이며,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는 이들이 넘칠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하다면 이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수익 사업이 전개될 것이다. 물론 그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다. 구리가 아니라 백금으로 레코드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다만 지금 우리가 보이저호 이야기를 읽으며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낭만을 느끼기는 어려우리라.

보이저호에 실린 골든 레코드는 지구와 태양이 수명을 다하는 수십 억 년 뒤에도 우주 저 편 어딘가를 날아가며 자신을 읽어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구의 속삭임』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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