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에서 기술의 정의를 두고 에너지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한 가지 답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무엇이 좋은 기술인가라는 또다른 질문을 생각할 수 있고, 여기서 기술의 다른 한 가지 특성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비용이다. 기술이 에너지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들어간 자원과 나온 자원의 비율을 통해 효율을 말할 수 있을 것이며, 당연히 들어가는 것이 적을수록, 그리고 나오는 것이 많을수록 좋은 기술일 것이다. 이를 다시 비용의 관점에서 본다면, 위 질문의 답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곧, 같은 결과물을 만드는데 비용을 낮출 수 있는 기술이 좋은 기술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최종 결과물로써의 제품에는 이러한 수많은 기술이 들어가 있다. 그 제품의 가격은 그 제품에 들어간 기술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곧, 기술자의 입장에서 아무리 혁신적이고 아름다운 기술이라 하더라도, 가격의 문제로 그 제품을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게 만든다면 그 기술의 의미는 크게 퇴색될 것이다. 반대로 거의 비슷한 기술이라도 조금이라도 가격을 낮출 수 있게 된다면, 그 기술은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오늘날 기업들은 늘 이러한 현실에 부딪히고 있다. 불과 몇 년 만에 우리는 비슷한 제품들을 가격 순으로 정렬해 한 화면에 보여주는 세상에 살게 되었고, 똑같은 제품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낮은 가격에 내놓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곧 어떤 관점에서는 소비자천국이라 할 만한 승자독식의 시대를 살게 되었다.
이는 역으로, 남들보다 고지를 먼저 차지하게 만들어주는 신기술의 중요성을 높였다. 과거 모든 신기술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 등장하는 제품들의 가격은 고가로 시작해 점차 내려간다. 때로 너무 빨리 등장해, 곧 시장이 충분히 무르익지 못해 살아남지 못했던 제품들이 있으며, 반대로 이미 기술력이 충분했음에도 너무 늦게 나타나 시장 장악에 실패했거나 혹은 다음 세대의 기술에 먹혀버린 경우도 있다. 결국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가격으로, 그러면서도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원가보다 충분히 높은 가격으로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모든 기업의 숙명인 셈이다.
이번 꼭지에서는 기술적으로 훌륭하다고 생각되지만 아직 일반화되기에는 가격의 저항이 있을 수 있는 제품들을 골라 보았다.
1) 쉐이드크래프트(Shadecraft)의 선플라워(Sunflower)
아래 사진에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이 제품은 비치 파라솔이다. 그러나 기존 파라솔과는 다르다. 기존의 파라솔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을까? 바로,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파라솔을 움직이거나, 아니면 사용자가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 파라솔은 그 문제를 멋지게 해결하는데, 바로 태양을 따라 파라솔이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제품의 이름 – 선플라워, 곧 해바라기 – 은 그 기능을 직관적으로 나타낸다. 한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모든 전자 제품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전원 문제를 태양 에너지로 해결한다.
Figure 13 쉐이드크래프트의 선플라워
태양 에너지가 이런 큰 파라솔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에너지가 나오는가의 의문이 들지만 이들은 실제 동작하는 제품으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게다가 태양 에너지의 고질적 문제점인 구름으로 인한 불안정한 에너지 수급 문제도, 이 제품을 사용하는 지역은 모두 태양이 충분한 곳일테니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자체 충전되는 배터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다양한 응용을 상상하게 만든다. 전원이 없는 야외에서 전원을 공급해주는 장치라는 점에서 스마트폰 등의 전자제품 충전이나 야간 라이트, 방범 카메라, 온습도계, 전기해충퇴치기 등 수많은 제품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가격이다. 다소 아이러니하지만, 전자제품이라도 가격과 제품의 크기는 어느 정도 비례한다. 출시 예상가를 묻자 $5,200 (약 600만원) 이라고 답한다. 나는 바로, 월마트에서 $10 정도에 파는 파라솔을 떠올리며 그냥 파라솔보다 100배 정도 비싸군요라 말하고 관계자도 조금은 인정하는 듯이 웃는다. 하지만 역시 이러한 지적을 많이 받았다는 듯이 최고급 파라솔 중에는 더 비싼 (약 $6,000) 것도 있어요라고 답한다. 나도 인정한다. 결국 그 시장이다. 충분히 제대로 동작한다는 기본에 얼마나 외관을 고급스럽게 만들 수 있을지, 그리고 수명이 얼마나 될지가 중요할 것이다.
2) 런드로이드(Laundroid) vs 폴디메이트(Foldimate)
이 두 제품은 많은 것이 자동화된 집안일 영역에서 아직 남아있는 ‘귀찮은 일’인 빨래개기를 해결한다. 다음 코너인 3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스티븐 핑커는 빨래에 들어가는 시간이 1920년 주당 11.5시간에서 2014년 1.5시간으로 줄었다고 이야기한다. 이 변화는 세탁기와 건조기의 개선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빨래를 개는 영역은 아직 개선되지 않았으며 이 두 제품은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한다. 단지 문제의 해결방식이 이 두 제품의 가격차이($16,000 vs $980)만큼 판이하다.
2-1) 런드로이드(Laundroid)
사실 이 제품은 작년에도 전시된 제품이다. 부쓰 자체를 하나의 발표회장으로 사용하며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일본의 세븐드리머스라는 로봇제조회사의 제품이며, 아래 서랍에 구겨진 옷을 넣으면 로봇이 옷을 하나씩 들어올려 인공지능으로 옷의 종류를 파악하고 그 옷에 맞게 옷을 접는다.
Figure 14 런드로이드 제품 소개장면
문제는 역시 가격이다. 한화로 약 1800만원 정도라는 가격을 들으면, 최저 시급을 받고 옷을 개주는 사람이 떠오르는 동시에 왠지 이 기계는 옷을 개는 것 뿐 아니라 벗어둔 옷을 모아서 빨래를 하고 말린 후에 개어서 옷장에 정리까지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담당자는 빨래와 건조를 위 로봇에 연결시킨 제품을 개발중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 정도 일을 해준다고 해도, 일반 가정에서 이 제품을 구매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량의 빨래가 필요한 호텔과 같은 사업장에서 의미가 있을 수 있고 이때는 정말로 실제 인간과의 비용을 비교하게 될 것이다.
2-2) 폴디메이트(Foldimate)
CES 에는 웬만한 제품에 대해 경쟁제품이 존재한다. 다른 버전으로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이도 생각할 수 있다, 혹은 성경에 나오는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도 있겠다.
폴디메이트는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으로 제품 이름이 곧 회사 이름이다. 이 제품 역시 빨래를 개지만 위의 런드로이드가 빨래를 맡긴 이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과 달리 아래 사진 에서 보는 것처럼 옷을 하나 하나 펼쳐서 기계에 넣어줘야 한다. 그러나 이 제품은 약 110만원($980)으로 위에 설명한 런드로이드와의 약 1/20 이며, 이 사실이 그 정도의 귀찮음은 곧 잊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문제는 이 제품이 빨래를 개는 시간을 정말 크게 줄여주는가 하고 묻는다면, 또 그렇지는 않다는 점이다. 역시 런드로이드처럼, 일반 가정 보다는 수많은 빨래를 깔끔하게 접어야 하는 영업장에서 더 유용할 것 같다. (하지만 이 경우 이 제품이 빨래를 얼마나 깔끔하게 일관적으로 접어내는가 하는 근본적인 성능의 문제가 있다.)
Figure 15폴디메이트
시제품은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판매예정시기는 2019년 말로 아직 많은 개선이 필요한듯 하다.
3) 유베카(Euveka)
유베카는 마네킹을 스마트하게 만든 제품이다. 마네킹의 일반적인 목적은 매장에서 옷을 디스플레이하는 것이지만 이 제품은 특별한 기능을 추가했다. 바로, 신체의 사이즈를 입력하면 마네킹이 부풀어올라 그 사이즈로 변신하는 것이다.
Figure 16 Thin and Fat
물론 문제는 가격으로 직원은 가격이 약 $4,000 (약 440만원)이 될 것이라 말한다. 선플라워와 비슷하게 시중 마네킹의 100배이다. 하지만 이 제품은 일반 매장용이 아니라 의류 디자이너 혹은 스포츠의류 개발업체를 위한 것이라 말한다. CES 에서도 아이디어를 높이 평가해 혁신상(Innovation Award)을 주었다.
4) 코라빈(Coravin)
아래 제품은 모양만 보고서는 어떤 제품인지 맞추기 어려울 것이다.
Figure 17 코라빈
다음 사진이 이 제품의 용도를 말해준다. 바로, 와인 코르크위에 끼워 코르크를 따지 않고도 와인을 마실 수 있게 해준다. 그게 어떤 장점이 있을까? 이 제품이 해결하는 문제는 바로 와인을 한 번 따고나면 그 자리에서 다 마셔야만 하는 불편함이다. 곧, 코르크를 뽑지 않고 와인을 마시게 함으로써, 즉 한 병의 와인을 여러 번 마실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가는 관으로 코르크마개에 구멍을 뚫고 아르곤 가스의 압력을 이용해 와인을 따라마시게 된다. 마시고 나서 기계를 뽑으면 코르크마개의 탄성에 의해 다시 밀봉된다.
Figure 18 코라빈
가격은 기계만 $400(약 45만원)이며, 한 통에 와인 15잔을 먹을 수 있는 아르곤 캡슐은 개당 만원 꼴이다. 약간 비싼 가격으로 보이지만, 한 번에 마시는 술의 양이 줄고 있는 추세를 잘 반영하는 제품이라 할 수 있다.
Figure 19 아마존의 와인스토퍼 검색결과
단지 이러한 수요를 해결하는 기존의 제품이 훨씬 더 저렴하다는 문제가 있다. 바로 와인 스토퍼(Wine stopper)로 알려진 제품들로, $10 내외의 많은 제품이 있으며 같은 가격에 내부를 진공으로 만들어 와인이 상하는 것을 막는다는 배큐빈(Vacu vin)이라는 제품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