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디지털 vs 아날로그

이번 장의 제목은 언뜻 시대를 잘못 찾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마 몇 십 년 전, CD가 처음 등장해 수 십 년 동안 세상을 지배하던 LP와 카세트 테이프를 서서히 사라지게 만들던 시기에 이런 관점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그 CD 조차도 물성이라는 아날로그적 특성 때문에 어느새 MP3 로 대체되었고, MP3는 다시 클라우드 서비스로 대체되었다. 결국 조금 더 디지털적인 기술이 등장할 때, 기존의 기술은 과거의 것이 될 뿐이다.

물론 최근 “아날로그의 습격”과 같은 책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LP나 종이, 카메라 필름 등 과거의 기술이 다시 유행하기는 하지만, 이들의 인기에는 이미 사라진, 혹은 사라져가는 것들이 그 희귀성으로 인해 획득하게 된 사치재(Luxury goods)적 성격이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쿨하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지만, 살아난 이후에는 더 이상 쿨하지 않게 될 것이다.

혹은 아래 소개하는 러브박스처럼 감성에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같은 메시지를 전하더라도 디지털인 문자를 이용하는 것보다 조금 더 불편하게 상자를 열어 메시지를 읽게 하는 것이다. 효율과 속도를 가장 중시하는 이 세상에서, 이런 한 템포 느린 기술의 의미는 분명하다. 내가 당신을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것. 곧, 학을 접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비효율적인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생각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아래 첫 두 제품인 러브박스와 쇼트 에디션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가 어떻게 자리잡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제품이다. 반면, 세 번째 바오니스와 유니스텔라는 극단적인 디지털로의 변화 때문에 오히려 어색함을 느끼게 되는 오늘날을 보여준다.

1) 러브박스

아래 사진과 영상은 러브박스라는 야릇한 (혹은 달달한) 이름의 프랑스 회사이다. 제품은 매우 단순하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상자를 선물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생각날 때마다, 이 회사의 앱으로 사랑의 문자를 보낸다. 상대방은 상자 앞 하트가 흔들리면, 당신이 보낸 세레나데가 도착했음을 알게 되고 상자를 열어 그 내용을 확인한 후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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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5 스마트 메시지 박스: 러브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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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6 러브박스의 작동방식
물론 이런 설명을 다 듣고 난 후에도 전형적인 CES 사람들은 ‘복잡하게 그럴 것 없이 그냥 상대방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되지 않나요’라고 묻게 되는데, 그 경우 ‘정말 당신은 그 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인가요’라는 애처로운 눈빛과 함께 ‘이쯔 낫 로맨띡’이라는 프랑스 억양의 체념 어린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이 제품으로 이제 그만 만나자는 메시지를 보내면 어떻게 되는지는 차마 묻지 못했다.)

가격은 $99(약 11만원)이다.

2) 쇼트 에디션

또다른 아날로그 승리의 현장이다. 아래, 자판기처럼 보이는 이 제품은 도대체 무엇을 파는 걸까? 사진을 잘 살펴보면 1분, 3분, 5분의 세 종류가 있고 여기에 해당하는 버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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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7 스토리 벤딩머신: 쇼트 에디션
이 제품은 바로 이야기를 판다. (물론 모든 제품은 자신의 이야기를 파는 것이지만, 이 제품은 실제로 ‘이야기’를 인쇄해서 판다.) 1분, 3분, 5분은 바로 그 소설을 읽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그럼 무엇을 받고 팔까? 아무것도 받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이들은 돈을 버는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제품이 해결하는 문제는 바로 사람들의 지루함을 덜어 주겠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이 지루해할 수 있는 공간에서 그 사람들을 위해 이 기계를 구매하게 된다. (하지만, 누구나 잠깐의 틈만 생겨도 스마트폰을 꺼내는 시대에?) 즉, 이들은 이 이야기 판매기를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시설에 파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설의 소유자를 위해 기계의 윗부분에 광고를 달 수 있게 하고, 광고비를 서로 나눠가진다. 즉, 시설, 기계 회사, 사람들은 모두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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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8쇼트 에디션을 설치한 장소들

실제로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이 기계를 설치한 파리 공항, 펜스테이트 대학, 웨스턴 팜비치 도심 등의 이름이 있다.

3) 바오니스(Vaonis) vs 유니스텔라(Unistellar)

위의 두 제품과 달리 이 두 제품, 곧 망원경은 디지털의 또다른 정복을 상징한다. 물론 이들이 해결하려는 문제는 명확하다. 바로,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밤하늘의 별… 아마 별은 인류가 인류가 아니던 시절부터 그들에게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알려주는 존재였을 것이다. (물론 다른 유인원이 별을 관찰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긴 하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별은 신의 뜻을 전달하는 도구였고,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는 순수함을, 윤동주의 “별헤는 밤”에서는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 어머니…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를 통해 인류가 우주를 더 친숙하게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는 토성 근처를 지나면서 태양계의 행성들 사진을 찍었고, 지구는 아주 작은 점으로 나타났다. 칼 세이건은 이를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불렀는데, 이를 통해 그는 우리가 우주 속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를, 우리가 일상에서 매달리는 그 모든 것들이 우주의 시선에서 볼때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더 배려하고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마음이 바로 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문대는 아는 사람들은 아는 비밀의 데이트 장소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기 오염과 빛 공해 때문에 우리는 별을 보지 못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G20 국가 중 이탈리아에 이은 빛 공해 2위 국가로, 부모님 세대에서는 흔히 보았던 은하수를, 우리 세대에서는 맨눈으로 본 이들이 거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 두 제품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아래 바오니스(Vaonis)의 스텔리나, 그리고 유니스텔라(Unistella)의 제품은 모두 최신 광학기술을 이용해, 개인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망원경으로도 별 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사진으로나 보던 성운, 성단, 그리고 다른 은하를 볼 수 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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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9 바오니스(Vaonis)의 스텔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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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0 유니스텔라(Unistellar)

기존의 망원경에서는 실제 별에서 출발한 빛이 렌즈를 통과해 반사되거나 굴절되어 우리의 눈으로 바로 들어온다. 적어도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이 실제로 저 별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사실에 약간의 감동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망원경에서는 렌즈를 통과한 빛이 디지털 카메라에 쓰이는 CMOS* 이미지 센서에 도달한다. 즉, 이들 망원경은 사실상 디지털 카메라와 같다. 단지 사진을 찍어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로 보여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쨌든 CMOS 이미지 센서를 이용해 이들은 빛을 증폭시켜,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장면들을 보게 해 준다. 문제는 어떻게 보여주느냐일 것이다.


* Complementary metal–oxide–semiconductor. CMOS 이미지 센서는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어 저장해 주는 센서를 말한다.

스텔리나는 아래 사진처럼 아예 이미지 처리를 한 영상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전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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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1 스마트폰을 통해 별을 관찰한다
물론 고성능 센서와 이미지 처리 기술에 의해, 맨눈이나 소형 망원경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아래와 같은 별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처음 이야기한 어색함이 등장다. 이렇게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는 것이 과연 실제 별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망원경의 방향을 움직임에 따라 영상도 바뀌며, 내가 원하는 밤하늘의 대상의 바로 지금 모습을 관찰할 수 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실제로 별을 관찰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경험의 측면에서, 스마트폰으로 별 사진을 보는 것이, 구글에서 그 사진을 검색해서 보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은하, 성단, 별자리는 그 사진이 찍힌 수 년 전에 비해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심지어 구글에는 지표면이 아닌, 우주에 올라가 있는 허블 망원경이 찍은, 훨씬 더 선명한 사진들이 있다.

3-1) 바오니스(Vaonis)의 스텔리나

가격: $3,000

3-2) 유니스텔라

가격: $1,600

유니스텔라는 이 질문에 대해 자신들도 동의한다고 답한다. 비록 이들 역시 CMOS 이미지 센서로 영상을 기록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대신 망원경 옆에 위치한 아이피스를 통해 직접 눈을 대고 그 영상을 보게 만들었다고 한다.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다. 어떻게 보면, 바오니스처럼 편한 자세로 스마트폰을 통해 볼 수 있는 디지털 영상을 굳이 눈을 아이피스에 밀착해 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다르게 말하면, 어떤 문제를 가리고자 다른 불편을 만드는 것이 과연 올바른 해결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문제의 본질은, 이들 제품이 보여주는 것이 별에서 출발한 바로 그 빛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로 이미지 프로세싱을 거친 영상이라는 데에 있을 것이다.

두 제품을 한참 바라보다보면 알게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더 나은가가
아니다

아날로그 망원경, 곧 기존 업계는 시장의 관점에서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다. 기술은 발달할 만큼 발달했고, 가격 또한 내려올 만큼 내려왔다. 새로운 업체가 들어가기 힘들 뿐 아니라 시장의 규모 또한 정체되어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제품은 적어도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 그뿐 아니라, 기술의 개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즉, 아이피스든, 스마트폰이든 실제로 별을 보는 것과 점점 더 비슷한 경험을 만들 수 있게될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 또한 바뀐다.

두 회사는 기술적으로 그것이 가능해졌을 때, 시장에 제품을 내놓았을 뿐이다. 단지, 지금이 비즈니스 관점에서도 적절한 시점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질문이다. 물론 그 답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이 두 제품은 한 가지 특징을 더 가지고 있다.

두 제품 모두 망원경과 삼각대를 배낭에 넣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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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2 이동성을 강조하는 바오니스와 유니스텔라

오늘날 소비 트렌드는 점점 더 물건보다는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위의 배낭 사진은 이런 스토리를 전달한다. “이 제품을 구매한다면, 당신은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속에서 당신만의 밤 하늘을 즐길 수 있습니다.” 솔깃한 제안이다.

5. 같은 문제, 다른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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